엔딩을 본 유저가 1%도 안 되는 게임들
이 글에서 다루는 게임들은 단순히 “어렵다”는 이유로 끝까지 가지 못한 게임이 아니다. 구조적으로, 심리적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플레이어를 시험하며 끝까지 남을 사람을 가려낸 게임들이다.
엔딩을 본 유저 비율이 1%도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 게임들이 실패했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소수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뜻일까.
엔딩 도달률 1%가 의미하는 것
대부분의 게임은 엔딩을 전제로 설계된다. 난이도 곡선은 완만하게 조정되고, 플레이어가 중도 포기하지 않도록 다양한 장치가 배치된다.
하지만 어떤 게임들은 정반대다. 중도 이탈을 막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선택으로 받아들인다. 그 결과, 엔딩은 보상이 아니라 증명이 된다.
“이 게임을 여기까지 끌고 온 사람”이라는 증명 말이다.
어려움보다 더 큰 장벽, ‘지속성’엔딩을 못 보는 이유는 단순한 조작 난이도가 아니다. 반복되는 실패, 불친절한 설명, 감정적으로 무거운 서사, 그리고 긴 플레이 타임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플레이어는 어느 순간 이렇게 느낀다.
“재미는 있는데, 계속하기엔 너무 버겁다.”
이 지점에서 대부분은 게임을 멈춘다. 저장 파일은 남아 있지만, 다시 실행되지는 않는다.
끝까지 가야만 의미가 완성되는 게임
이런 게임들의 특징은, 엔딩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전체 구조가 이해된다는 점이다. 중반까지는 불친절하고 모호하지만, 마지막에 모든 퍼즐이 맞춰진다.
문제는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그 퍼즐을 보기 전에 떠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게임들은 평가조차 양극화된다.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와 “이 게임은 끝까지 가야 한다” 사이에서.
플레이어를 시험하는 설계엔딩 도달률이 극단적으로 낮은 게임들은 공통적으로 플레이어의 태도를 시험한다. 빠른 보상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잔인할 정도로 무심하다.
체크포인트는 드물고, 설명은 최소화되며, 실패는 반복된다. 하지만 그 과정 자체가 게임의 메시지인 경우가 많다.
이 게임들은 묻는다.
“그래도 계속할 것인가?”
포기한 사람이 더 많은 게임의 아이러니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게임들은 기억에 오래 남는다. 끝까지 가지 못했어도, 어딘가 마음에 걸린다.
엔딩을 본 소수의 플레이어가 남긴 리뷰는 대체로 비슷하다. “힘들었지만, 이 게임은 이렇게 끝나야 했다.”
다수의 플레이어는 그 결말을 직접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게임의 성격은 완성된다.
엔딩을 포기하도록 설계된 게임일 수도 있다
모든 게임이 많은 사람에게 끝까지 플레이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게임은 의도적으로 문턱을 높인다.
이는 상업적으로는 불리한 선택이다. 하지만 예술적·철학적 관점에서는 분명한 메시지를 가진다.
이 게임들은 말한다.
“모두를 위한 이야기는 아니다.”
수치로는 실패, 경험으로는 완성엔딩 도달률 1%라는 숫자는 시장 논리로 보면 실패에 가깝다. 하지만 이 수치는 동시에, 게임이 타협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게임들은 접근성을 선택하지 않았고, 대신 밀도를 선택했다. 많은 플레이어를 얻는 대신, 강한 기억을 남겼다.
그리고 그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마무리하며
엔딩을 본 유저가 극히 적다는 사실은, 이 게임들이 잘못 만들어졌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무엇을 포기하지 않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모두에게 닿지 않아도 괜찮다는 태도, 끝까지 남은 사람에게만 전해지는 이야기.
이 게임들의 엔딩은 그래서 더욱 무겁고, 오래 남는다.
출처
Steam 도전 과제 통계, 개발자 인터뷰, 플레이어 리뷰 및 게임 디자인 분석 자료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