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보드게임 추천 (파티게임, 전략게임, 감정놀이)

비 오는 주말, 아이와 뭘 하나 고민하다가 결국 보드게임 검색창을 열었습니다. 저도 얼마 전 같은 상황이었는데, 종류가 너무 많아서 아이와 한참 실랑이를 벌이고서야 겨우 세 가지를 골랐습니다. 어린이날 선물을 앞두고 같은 고민을 하시는 분들을 위해 직접 해보고 느낀 것들을 정리해봤습니다.

몸으로 웃게 만드는 파티게임,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파티게임(Party Game)이란 규칙이 단순하고 여럿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된 게임입니다. 쉽게 말해, 설명 5분 이내에 누구나 바로 시작할 수 있어야 진짜 파티게임입니다. 이 기준을 모르면 아이들이 규칙 설명을 듣다 지쳐서 게임도 시작 전에 흥미를 잃는 경우가 생깁니다.

흔들흔들 해적선이나 톡톡 우드맨 같은 게임들이 대표적인데, 제가 직접 아이와 해봤더니 예상보다 훨씬 오래 붙잡고 있었습니다. 특히 톡톡 우드맨은 도끼로 나무 조각을 떼어내는 구조인데, 힘 조절 하나로 승패가 갈리는 단순함이 오히려 집중력을 끌어올렸습니다. 어른이 봤을 때 "이게 재미있나?" 싶어 보이는 게임이 아이들 눈에는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파티게임은 본 게임을 시작하기 전 아이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워밍업 역할도 합니다. 저는 이 부분을 모르고 처음부터 전략 게임을 꺼냈다가 아이가 10분도 안 돼 흥미를 잃는 경험을 했습니다. 분위기를 먼저 올려주는 쉬운 게임을 먼저 하나 깔아두는 게 훨씬 효과적이었습니다.

전략게임이라고 어른만 즐기는 건 아닙니다

전략게임(Strategy Game)은 단순한 운이 아니라 상대방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내 선택을 조율하는 사고력이 필요한 게임입니다. 체스나 바둑과 같은 맥락이지만, 요즘 아이들이 접근하기 쉽게 만들어진 버전들이 많습니다.

쿼리도(Quoridor)가 그 대표적인 예인데, 자신의 말을 앞으로 이동시키거나 상대방 앞에 벽을 세우는 두 가지 선택만 존재합니다. 규칙 자체는 단순하지만 실제로 해보면 몇 수 앞을 내다봐야 하는 구조라 생각보다 깊이가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 쉽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이에게 지고 나서 꽤 충격을 받았습니다.

스플렌더(Splendor)는 전략 보드게임 중에서도 마니아층이 두터운 게임입니다. 보석 토큰을 모아 카드를 구매하고 귀족을 유치하는 엔진 빌딩(Engine Building) 방식, 즉 초반에 쌓은 자원이 후반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구조로 진행됩니다. 초등학교 3~4학년 이상이면 충분히 즐길 수 있고, 아이들이 자고 난 뒤 어른들끼리 다시 꺼내기에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 게임은 가족 전체의 게임이라고 보는 게 더 맞습니다.

전략게임이 아이의 발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양한 시각이 있습니다. 단순히 이기고 지는 것에 집중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그보다 문제 해결 과정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벽 하나를 어디에 놓을지 고민하는 그 짧은 순간이, 스마트폰 게임 한 시간보다 훨씬 밀도 있는 사고 훈련이라는 걸 직접 옆에서 보면서 느꼈습니다.

수학인데 수학처럼 안 느껴지는 게임들

보드게임 중에는 아이들이 수학인지도 모르고 즐기는 종류들이 있습니다. 슬리핀 퀸즈(Sleeping Queens)는 손에 든 카드로 덧셈, 뺄셈 같은 연산식을 만들어 잠든 여왕을 깨우는 방식입니다. 연산(四則演算)이란 덧셈·뺄셈·곱셈·나눗셈 네 가지 기본 계산 방식을 총칭하는 말인데, 이 게임은 그 연산을 자연스럽게 반복 훈련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저희 아이는 이 게임을 너무 많이 해서 카드가 너덜너덜해질 지경이었는데, 그 덕분인지 초등 저학년 덧셈 계산을 꽤 빠르게 처리하게 됐습니다. 억지로 연산 문제집을 풀리는 것과 결과는 비슷하지만 과정은 전혀 달랐습니다.

우봉고(Ubongo)는 도형 감각을 기르는 데 특화된 게임입니다. 공간지각력(空間知覺力)이란 도형을 머릿속에서 회전하거나 뒤집어 보는 능력을 말하는데, 이 능력은 이후 수학의 도형 영역과 과학의 입체 구조 이해에 직접 연결됩니다. 우봉고는 펜토미노(Pentomino)라는 교구에서 출발한 게임인데, 펜토미노란 정사각형 5개를 이어 붙여 만든 12가지 도형 조각을 가리킵니다. 이 조각들을 특정 틀 안에 맞춰 넣는 과정이 아이들의 공간지각력을 자연스럽게 자극합니다.

저희 아이가 학교 쉬는 시간에도 친구들과 우봉고를 즐긴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솔직히 좀 뿌듯했습니다. 집에서 시작한 놀이가 학교 생활과 친구 관계로까지 이어진 셈이니까요. 한국교육개발원에서도 놀이 중심 학습이 아동의 수리 감각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꾸준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감정놀이 보드게임,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아이가 갑자기 짜증을 내거나 말수가 줄어들 때, 직접 "왜 그래?"라고 물어봤자 "몰라"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 즉 감정 어휘력(Emotional Vocabulary)이 아직 완전히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감정 어휘력이란 자신이 느끼는 감정 상태를 정확한 단어로 설명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이 문제를 보드게임으로 풀 수 있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좀 억지스럽지 않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써봤더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160장의 사물 카드를 활용해 지금 자신의 기분을 이미지로 표현하는 방식인데, 아이가 손톱깎이를 집어 들고 "지금 머릿속이 이렇게 엉켜 있어"라고 말하는 순간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말로는 꺼내지 못했던 감정이 사물을 통해 나온 것입니다.

선물 익스트림 같은 게임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카드를 주고받으며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는 구조인데, 사회적 추론 능력(Social Inference), 즉 상대방의 행동 뒤에 있는 의도를 짐작하는 능력을 게임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습하게 됩니다. 이런 능력은 학교 생활에서 친구 관계를 형성하는 데도 직접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아동 정서 발달 관련 자료에서도 또래와의 상호작용 놀이가 아동의 사회성 발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후회하는 것 중 하나는 식당에서 밥 한 끼 편하게 먹으려고 폰으로 뽀로로를 보여줬던 일입니다. 그날 이후 아이가 집에 와서도 폰을 찾기 시작했고, 그때 처음으로 미디어 노출의 파급력을 실감했습니다. 보드게임은 그 반대 방향의 경험을 줍니다. 눈을 맞추고, 몸을 부딪히고, 서로 반응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온기가 생깁니다.


아이와 함께하면 좋을 보드게임을 목적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분위기 워밍업이 필요할 때 — 흔들흔들 해적선, 톡톡 우드맨처럼 규칙이 단순하고 웃음이 터지는 파티게임
  2. 수학 학습과 놀이를 동시에 — 슬리핀 퀸즈(연산), 우봉고(도형 공간지각), 쏙쏙 키즈기(길이 비교)
  3. 집중력과 전략 사고 훈련 — 쿼리도, 스플렌더처럼 수 읽기가 필요한 전략게임
  4. 아이의 감정 상태가 궁금할 때 — 사물 카드를 활용한 감정 표현 게임, 선물 익스트림

보드게임방이 하나둘 사라지는 걸 보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는데, 이번에 집에서 여러 게임을 해보고 나니 오히려 집이 더 좋은 보드게임 공간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이는 게임 자체보다 함께 앉아 있는 시간을 더 오래 기억하더라고요. 어린이날 선물을 고민 중이시라면, 게임 하나가 아니라 그 게임을 함께할 시간을 선물한다는 마음으로 골라보시길 권합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8ZkslrbtU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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