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하는 아이 (게임 직업, 게이미피케이션, 승패 교육)

아이가 "엄마, 게임 해도 돼?"라고 묻는 게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수학 문제 한 장, 한글 문제 한 장도 채 펴지 않은 채로 먼저 태블릿부터 꺼내는 아이를 보면서, 게임이 과연 이 아이에게 어떤 의미인지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게임은 시간을 낭비하는 도구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그 안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이 담겨 있었습니다.

게이미피케이션, 게임이 교육이 되는 순간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이란 게임이 아닌 분야에 게임의 요소와 원리를 적용하는 방식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게임처럼 재미있게 학습이나 훈련을 설계하는 교육 방법론입니다. 처음에 저는 이 개념을 책에서 접했을 때 그게 실제 육아 현장에서 얼마나 유효한지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아이가 7세에 마인크래프트(Minecraft)를 시작하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아이는 작은 블록 하나하나를 골라 무언가를 쌓아 올렸고, 어느 날 저를 데려가 자신이 만든 구조물을 자랑스럽게 설명했습니다. 제가 게임을 잘 몰라서 그냥 "와, 잘 만들었네"라고 했는데, 아이는 이 블록이 어떤 재료이고 저 블록을 쓰면 어떻게 달라지는지 줄줄이 설명해 줬습니다. 순간 웃음이 나면서도 이건 그냥 노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인크래프트는 샌드박스 게임(Sandbox Game)에 속합니다. 샌드박스 게임이란 정해진 목표 없이 플레이어가 자유롭게 세계를 구성하고 탐험할 수 있는 열린 구조의 게임 방식입니다. 이 구조 안에서 아이는 공간 감각을 익히고, 재료의 특성을 파악하고,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문제를 해결합니다. 교육학에서 말하는 프로젝트 기반 학습(PBL, Project-Based Learning)과 구조적으로 매우 유사합니다. PBL이란 학습자가 실제 문제를 스스로 탐구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지식을 습득하는 방식입니다.

실제로 한국교육개발원(KEDI)은 게임 기반 학습(GBL)이 학습자의 몰입도와 문제해결력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게임 기반 학습(GBL, Game-Based Learning)이란 게임 자체를 학습 도구로 활용하는 교수법을 말합니다. 저는 이 개념을 알고 나서부터, 아이가 게임을 한다고 무조건 제지하는 대신 아이 옆에 앉아 같이 보기로 했습니다.

직업탐색, 게임 좋아하는 아이에게 어떻게 접근할까


일반적으로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게임 개발자가 되면 되겠네"라고 가볍게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그 말이 얼마나 얕은지를 게임 개발자로 일하는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실감했습니다. 게임 개발이라는 직무는 단순히 게임을 잘하는 것과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게임 개발 직군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1. 소프트웨어 엔지니어(Software Engineer): 게임의 로직과 기능을 코드로 구현하는 개발자로, 유니티(Unity)나 언리얼 엔진(Unreal Engine) 같은 게임 개발 엔진을 다룹니다.
  2. 게임 아티스트(Game Artist): 캐릭터, 배경, 이펙트 등 게임의 시각적 요소를 제작하는 디자이너입니다.
  3. 게임 디자이너(Game Designer): 게임의 규칙, 스토리, 레벨 구성 등을 설계하는 기획자입니다.

저는 아이에게 이 세 가지를 다 설명해 줄 생각은 없습니다. 아직 7살이니까요. 하지만 게임을 그냥 즐기는 것과 게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하는 것 사이의 간격을 조금씩 좁혀주는 것은 지금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저희 아이가 로블록스(Roblox)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꾸미고, 마인크래프트에서 직접 구조물을 설계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아이는 이미 본능적으로 창작과 구성의 재미를 알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진로탐색(Career Exploration)이란 자신의 관심사와 강점을 바탕으로 여러 직업 세계를 탐색하는 과정입니다. 꿈은 책상에 앉아 있다고 생기는 게 아닙니다. 게임 관련 서적을 사줬더니 아이가 의외로 잘 들고 다니더군요. 어떤 직업이든 깊이 알려면 읽고, 보고, 경험해야 한다는 것, 그것만큼은 어린아이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 같은 직업계고(職業系高)를 고려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직업계고란 특정 직업 분야의 전문 교육을 중점으로 운영하는 고등학교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직업계고를 선택하면 대학 진학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선취업 후진학 제도를 활용하면 취업 후에도 대학에 갈 수 있습니다. 오히려 또래보다 3년 일찍 전공 수련을 시작한다는 시간적 이점이 생깁니다. 물론 지금 당장 저희 아이에게 적용할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를 둔 부모라면 먼 미래를 미리 그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미디어습관, 규칙 없는 자유는 방치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어서, 밥을 하거나 집안일을 할 때 아이를 봐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티비나 태블릿을 틀어놓는 일이 많았습니다. 지금 아이가 미디어에 집착하는 건 절반은 제 탓이라는 걸 부정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미디어에 빠진 게 아이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압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에게 무한정 허용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지금 공부량과 독서량을 채운 뒤에 게임과 유튜브를 허용하는 방식을 쓰고 있습니다. 행동주의 심리학에서 말하는 조건부 강화(Contingency Reinforcement)와 비슷한 방식입니다. 조건부 강화란 특정 행동을 완료했을 때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그 행동을 강화하는 원리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아이는 매일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것을 먼저 묻고, 저는 매일 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수학 한 장, 한글 한 장 먼저 하고 해라." 이 말을 오늘도 했습니다.

한 가지 제가 긍정적으로 보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이가 게임에서 승패를 잘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요즘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패배를 경험시키지 않으려고 무승부 방식으로 게임을 진행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게 좋은 방향인지 의문입니다.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아이는 실패 앞에서 무너지기 쉽습니다. 게임 안에서 지고, 다시 도전하는 과정이 오히려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키웁니다. 회복탄력성이란 어려운 상황에서 다시 일어서는 심리적 힘을 말합니다. 저희 아이가 게임에서 졌을 때 툭툭 털고 다시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청소년 미디어 이용 실태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스마트폰 및 게임 이용 시간은 매년 증가 추세에 있으며, 보호자와의 미디어 이용 약속 여부가 과의존 예방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규칙 없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 방치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게임이 나쁜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도, 게임이면 뭐든 괜찮다고 방치하는 것도 둘 다 위험합니다. 저는 아이가 게임 안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만들고, 느끼기를 바랍니다. 동시에 해야 할 일을 먼저 하는 습관을 잡아주는 것이 지금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임과 공부, 미디어와 독서를 적의 관계로 만들지 않고 균형 있게 설계하는 것. 그게 쉽지 않다는 것도 알지만, 오늘도 저는 그 균형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y1JryXMXLL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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