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RPG 배럭 메타 (배럭게임, 숙제강박, 게임피로도)

솔직히 저는 배럭 게임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냥 부캐 많이 키우는 게임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몇 년을 굴려보니 이건 단순히 캐릭터를 여러 개 키우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지금 한국 RPG 시장을 움직이는 핵심 구조이고, 그 안에서 저도 꽤 오랫동안 피로감을 느끼면서도 손을 못 떼고 있었습니다.

배럭 메타란 무엇인가

배럭(Barrack)이란 한 계정 안에서 여러 캐릭터를 키우며 재화와 성장 수치를 본캐에게 집중시키는 운영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한 팀처럼 여러 캐릭터를 운용하되 실제로 활용하는 캐릭터는 따로 정해져 있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이게 지금 한국 주요 RPG 게임 대부분에 공통으로 깔려 있습니다.


(Union Link Skill)이 대표적입니다. 유니온 링크 스킬이란 보유한 캐릭터의 직업마다 고유하게 주어지는 능력치 보너스로, 계정 내 모든 캐릭터가 동시에 혜택을 받는 시스템입니다. 이번 업데이트에서 3레벨이 추가되면서 특정 캐릭터를 285레벨까지 올려야 해당 링크 스킬 레벨을 최대로 활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285레벨은 생각보다 훨씬 높은 수치라, 제가 처음 봤을 때 이걸 진짜로 요구하는 건가 싶었습니다.

로스트아크의 원정대 시스템, 던전앤파이터의 부캐 문화도 구조는 다르지만 방향은 같습니다. 아이온 2 역시 배럭을 운영하면 성장화 획득에서 이점이 생기는 구조라는 얘기가 들립니다. 결국 지금 한국에서 인기 있는 RPG 중 배럭 구조와 완전히 무관한 게임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건 배럭과 부캐(副캐릭터)의 차이입니다. 부캐란 애정을 갖고 키우는 서브 캐릭터를 뜻하고, 배럭은 재화 수급을 위해 반강제적으로 운영하는 캐릭터를 의미합니다. 던전앤파이터 유저들이 자기 캐릭터를 배럭이라고 부르면 불쾌해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분들에게는 본인이 애정을 쏟은 부캐인데, 외부에서 단순 재화용으로 취급받는 느낌이 드는 거니까요.

게임사가 배럭 구조로 돈 버는 방식

배럭 메타가 확산된 배경에는 수익 구조가 있다고 봅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배럭을 운영하는 유저일수록 게임사가 내놓는 유료 상품에 지갑이 열리기 쉬운 구조가 되어 있었습니다.

메이플스토리의 경우 챌린저스 서버 시즌마다 챌린저스 패스(약 3만 원), 모멘텀 패스(약 5만 원), 버닝 익스프레스(약 3만 원) 등을 판매합니다. 모멘텀 패스는 캐릭터를 280레벨에서 285레벨까지 성장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유니온 링크 스킬 3레벨을 여러 캐릭터에 적용하고 싶은 유저라면 이 상품이 굉장히 구미에 당길 수밖에 없습니다. 배럭 구조가 없었다면 이 상품의 매력도는 절반도 안 됐을 겁니다.

로스트아크는 챌린지 프리미엄(약 3만 원)과 모험의 길 패키지(약 2만2천 원)를 운영합니다. 제가 느끼기엔 로스트아크 패키지는 가성비가 상당히 잘 느껴지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특히 강화 패키지의 경우, 본캐에 쓰면 강화 단계가 높아 몇 번 못 누르지만 배럭에 쓰면 훨씬 효율적이라는 구조 자체가 배럭 패키지 구매를 자연스럽게 유도합니다.

던전앤파이터는 캐릭터 수가 많을수록 지출이 비례해서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칭호, 오라, 크리처가 1~2년 주기로 갱신되고, 이번에 새로 추가된 크리처는 이전 종결급 크리처와 성능 차이가 15%에 달한다고 합니다. 진심으로 키우는 캐릭터라면 갱신하지 않기가 애매한 수준입니다. 캐릭터를 여덟 개 키운다면 여덟 개 전부 비용이 발생한다는 뜻입니다.

배럭 게임이 수익 측면에서 게임사에 유리한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캐릭터 수가 늘어날수록 유료 아이템 소비 횟수가 자연스럽게 증가합니다.
  2. 시간이 부족한 유저는 돈으로, 돈이 부족한 유저는 시간으로 재화를 충당하게 되어 어느 쪽이든 게임에 계속 묶어 둘 수 있습니다.
  3. 신규·복귀 이벤트를 배럭과 연결하면 고인물 유저도 같은 이벤트에 참여할 동기가 생깁니다.
  4. 캐릭터당 주간 재화 획득량에 상한선을 두어 작업장 문제를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습니다.

한국 게임 시장 규모와 경쟁 구도를 보면 이 흐름이 이해는 됩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국내 게임 시장은 PC·모바일 RPG 장르가 매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그만큼 경쟁작도 많아 정액제 모델만으로 안정적인 매출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결국 유저 1인당 지출 단가를 높이는 방향으로 과금 모델이 설계될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봅니다.

숙제 강박, 저도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배럭 숙제를 안 하면 손해 본다는 강박이 꽤 오래 있었습니다. 주간 리셋이 얼마 안 남았는데 숙제를 다 못 뺐다 싶으면 실제로 불안감이 올라왔습니다. 이게 이상한 게 아니라, 배럭 구조 자체가 그런 감정을 유발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숙제 메타(Homework Meta)란 하루나 한 주 단위로 정해진 콘텐츠를 소화해야만 최적의 재화를 수급할 수 있는 게임 운영 방식입니다. 예전처럼 하루 종일 사냥터에 붙어 있는 무한 노가다 방식에서, 일정 시간 내에 정해진 콘텐츠를 클리어하는 방식으로 변화한 겁니다. 낮은 연령대가 아닌 직장인·성인 유저층이 주 소비층이 된 현실을 반영한 변화라고는 하지만, 그 결과 게임이 취미에서 일처럼 느껴지는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제가 경험상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게임을 접는 패턴이었습니다. 완전히 접는 게 아니라 돌리던 배럭 캐릭터를 하나씩 줄여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처음엔 열 개를 돌리다가, 피로감이 쌓이면 일곱 개로, 그다음엔 네 개로 줄이다 보면 어느 순간 그 게임을 거의 안 하게 됩니다. 저도 이 과정을 겪었고, 여러 커뮤니티에서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 분들을 꽤 많이 봤습니다.

그리고 새로 배럭 캐릭터를 만들 때 "이 직업이 재밌을 것 같아서"가 아니라 "숙제하기 편한 직업"을 고르게 되는 순간, 게임이 게임으로서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는 신호라고 생각합니다. 메이플스토리로 치면 컨트롤이 단순한 직업을 배럭으로 택하는 게 이미 일반화됐습니다. 재미보다 효율을 먼저 따지는 거죠.

배럭 메타의 한계와 앞으로의 방향

배럭 메타가 나쁘기만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도 어느 정도는 동의합니다. 주간 재화 획득에 상한선을 두면 라이트 유저와 헤비 유저 간 격차가 무한정 벌어지는 걸 막을 수 있고, 작업장(자동 프로그램을 이용한 재화 생산)을 억제하는 데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습니다. 이 점은 인정해야 합니다.

게임 내 경제 균형(In-game Economy Balance)이란 유저 간 재화 격차를 적절히 통제해 게임 내 시장 질서를 유지하는 개념입니다. 배럭 구조는 캐릭터당 주간 수급량에 상한을 두는 방식으로 이 균형을 조절하는 기능도 합니다. 단순히 돈만 뽑아내는 구조라기보다는, 게임 설계상 의도된 밸런싱 도구이기도 한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이 그 수준을 넘어섰다는 느낌이라는 겁니다. 메이플, 로스트아크, 던전앤파이터, 아이온 2까지 지금 한국 주요 RPG가 전부 이 구조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어딜 가도 배럭 게임이다 보니 RPG 게임의 다양성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한 캐릭터에 몰입해서 스토리를 따라가고, 그 캐릭터만의 성장 서사를 즐기는 경험은 점점 찾기 어려워졌습니다.

복귀 유저 입장에서도 이 구조는 진입 장벽이 됩니다. 예전에 배럭 숙제의 무게감을 직접 경험한 사람으로써 이야기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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